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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대표적인 명언 15가지를 소개합니다. 맹자의 시대를 꿰뚫는 명언은 2,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 표시를 했습니다.

 

 

맹자 명언 15가지

  • 정치라는 것은 자기 한 사람이 즐기려 해도 결코 즐길 수가 없는 것이다. 항상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깍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빈궁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러한 이유는 그 마음을 흔들어참을성을 기르게 하고, 지금껏 할 수 없었던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
  •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알지 못할 것이 없겠으나 아는 것보다 힘써야 할 것은, 당연히 무엇에 힘써야 할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 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물에는 먼저와 나중,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구별이 있고 아는 것보다는 행하는 것이 먼저다.
  •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책임을 추궁받지 않기 때문이다 
  • 몸에는 귀한 부분과 천한 부분이 있으며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 때문에 중요한 부분을 해쳐서는 안 되고 천한 부분 때문에 귀한 부분을 해쳐서는 안 된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키우는 자는 작은 사람이고 중요한 부분을 키우는 자는 큰 사람이다
  •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기르는 법을 알면서, 자기 몸을 기르는 방법(修養)을 알지 못하니, 어찌 자기 몸 아끼기를 오동나무와 가래나무 만큼도 못하는가? 이는 생각이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 일이 잘 안 풀려 궁색할 때는 홀로 자기 몸을 닦는 데 힘쓰고, 일이 잘 풀릴 때는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하라.
  • 길은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헛되이 먼 곳을 찾고 있다. 일은 해보면 쉽다. 시작하지 않고 미리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놓치는 것이다
  • 짐승 같은 자라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상대가 난폭하게 굴면 먼저 자기를 한번 반성해 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가 예(禮)를 다해도 상대가 난폭한 것을 고치지 않으면 그 상대는 짐승과 같은 것이니 실랑이를 해서 무엇하겠느냐.
  • 조화된 인격을 갖춘 자가 갖추지 못한 자를 길러 주고 재능이 있는 자가 없는 자를 길러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화된 인격을 지니고 재능있는 부모와 형제를 갖는 것을 즐거워한다. 만약에 조화된 인격을 갖춘 자가 갖추지 못한 자를 버리고 재능있는 자가 없는 자를 버린다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은 무엇이 다르겠는가? 
  • 죄인을 처벌하는데 있어 그 배우자(처자)에게까지 죄를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
  • 잘 자라는 어떤 것이라도 단 하루 정도 따뜻하게 해 주고 열흘 정도 차게 해주면 결코 잘 자랄 수가 없다. 즉 좋은 스승이 모처럼 좋고 참된 가르침을 해주어도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나쁜 것을 가르치면 결국은 나쁘게 되는 것이다.
  • 자기가 자기를 나쁘다고 단념하는 사람과는 함께 말할 수가 없다. 자기가 자기를 쓸모없다고 버리는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가 없다. 말끝마다 예의를 비방하는 것을 자포 (自暴)라고 하고, 나같은 자는 도저히 인의(仁義)를 행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한다. 어진 것은 사람이 편안히 살 집이요, 의리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그런데 저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은 그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으며, 바른 길을 두고도 가지 않으니 슬픈 일이다.
  • 자기의 길을 굽혀서 부정을 하고 있는 자가 다른 사람의 부정을 고쳐준 예는 아직도 없다. 먼저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 돌아온다

 

맹자 소개

맹자전국시대의 철학자로 공자의 유교 사상을 보충하고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맹자는 인의예지 (사람다움, 의로움, 예의로움, 지혜로움)을 강조하며, 임금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며 왕도정치를 주장하였다. 그는 동시대에 묵자와 양주의 사상과 경쟁하여, 유교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공자와 비슷한 위상을 가졌다고 평하여 '아성(亞聖)'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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