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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서북부 지역에는 청나라 황실에서 조성한 아름다운 정원(창춘원, 이화원, 원명원)이 모여있다. 그 중에서 경치가 가장 뛰어난 황가원림을 삼산오원(3곳의 산과 5곳의 정원)이라 부른다. 

 

목차
1. 창춘원 畅春园
2. 이화원(만수산) 颐和园(万寿山)
3. 원명원 圆明园

 


 

 

창춘원 畅春园

창춘원 畅春园은 베이징 서북부의 하이덴구에 위치해 있으며, 원명원의 남쪽과 베이징 대학의 서쪽에 위치한다. 시초는 원나라 만력제 시기에 ‘청화원’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으며 (지금의 청화대[칭화대학]과는 가까우나 엄연히 다른 곳이다), 명나라 멸망 후 폐허가 되었으나 청나라 강희제가 황실의 정원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강희제가 강남(양쯔강 일대) 지역을 방문했을 당시에, 강남의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어 강남의 정원을 본떠 창춘원을 조성하였다. 창춘원을 시작으로 ‘원명원’, ‘이화원’ 등 다른 정원들도 차례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원명원 관광지의 일부로 원명원과 함께 출입이 가능하며, 베이징 대학 캠퍼스와 맞닿아 있어 베이징대 정문은 늘 중국인 관광객이 붐빈다. 창춘원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고풍스런 건물들이 모여 있으며, 강남의 정원들이 그렇듯이 창춘원도 호수의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화원(만수산) 颐和园(万寿山)


이화원 颐和园은 1750년 청나라 건륭제가 세운 황실의 여름별궁으로, 당시에는 청의원이였으나 후에 이화원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화원하면 서태후가 떠오르기 때문에 서태후가 지은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100여년 앞서 설립되었다.

하지만 서태후가 이화원에 애착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서태후는 죽을 때까지 이화원에서 거주했으며, 이화원의 확장에 많은 돈을 사용하였다. 서태후 사후 이화원은 공원으로 개조되었다. 그래서 3층짜리 건물과 넓은 호수는 베이징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번 쯤 방문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편 이화원에는 베이징 3산 중의 하나인 만수산 万寿山이 함께한다. 만수산은 이화원의 인공호수인 쿤밍호를 조성하기 위해 파낸 흙으로 쌓아올린 산이다.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산임에도 높이가 무려 60m에 달하며, 중턱에는 티베트 불교사원인 지혜해가 세워져 있다. 만수산 정상에 오르면 이화원의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원명원 圆明园


원명원 圆明园은 1709년에 강희제가 자신의 네번째 아들인 옹정제에게 하사한 정원이다. 옹정제는 본인이 황제에 등극한 이후 원명원을 황궁의 정원으로 조성하였다.

원명원이 다른 정원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유럽식 건축이 접목되었다는 점이다. 장춘원 북쪽에는 로코코 양식의 서양루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청나라 황실의 서구 세계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원명원은 1860년에 영프연합군이 베이징을 침략하였을 때, 원명원의 문화재를 강탈하고 방화를 질러 원명원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 때문에 많은 중국인들은 원명원을 방문하여 과거의 치욕을 상기시킨다고 한다.

 


[관련 글 보기]

베이징의 황가원림 (2) - 정의원(향산), 정명원(옥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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