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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중국의 외교 관계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전랑외교(战狼外交)’라는 용어는 시진핑 시대 중국의 대외전략과 세계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전랑외교’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전랑외교란 무엇인가?

 전랑외교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비판에 대해 공세적으로 대응하며 자국과 상충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대립각을 세우는 외교전략이다. 전랑(战狼)이라는 한자어가 ‘싸우는 늑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나운 늑대의 이미지에서 따온 용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전랑’이라는 중국에서 크게 흥행한 국수주의 영화(소위 국뽕영화)의 제목에서 따온 말이다.

 

영화 <전랑2>

 

 여기서 잠깐 영화 <전랑>에 대해 소개하고 넘어가자. 영화의 주인공은 불명예 퇴역한 군인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선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아프리카 시장개척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러던 중 미국인 용병을 고용한 아프리카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고, 주인공은 반군에 맞서 중국인 교민들과 그들 밑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노동자들을 구하기 위해 고분분투한다는 이야기이다.

 

 전랑은 영화 내내 노골적으로 중국을 치켜세우는 반면, 미국을 깍아내린다. 영화 속 중국은 세계평화를 수호하는 책임감있는 국가로 묘사되는 반면, 미국은 아프리카인에게 약탈을 일삼는 '못된' 국가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최근 중국이 비판받고 있는 패권주의를 교묘하게 정의로운 행동으로 왜곡한다. 포스터에 적혀있는 '犯我中華者,虽遠必誅'('나의 중국(中華)을 범하는 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주살한다' )라는 슬로건은 중국식 패권주의에 대한 합리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결국 전랑외교를 ‘사나운 늑대’에 묘사하는 것도 반드시 틀린 비유만은 아닌 셈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전랑 외교관)

 

그래서 최근에는 중국 외교관의 성향에 따라 동물에 빗대어 구분을 하기도 한다. 미국에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내는 강경파 외교관들을 ‘전랑(늑대) 외교관’라고 부르는 반면, 미국에 온건한 입장을 유지하며 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외교관들은 중국을 상징하면서도 온순한 이미지의 ‘판다 외교관’이라고 부른다.

 

중국이 전랑외교를 구사하는 이유

 중국이 처음부터 ‘공격적인’ 전랑외교를 구사했던 것은 아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 공산당은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실시하지만 오히려 그 급진성으로 인해 경제는 후퇴하고 사회는 분열된다. 이에 마오쩌둥을 이어 주석이 된 덩샤오핑은 경제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서방세계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다.

 

도양광회

 

 그러다보니 외교적으로는 외부 국가와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추구하게 된다. 이 때 덩샤오핑이 꺼낸 유명한 용어가 바로 '도양광회(韬光养晦)'이다. 도양광회란 ‘빛을 감춰 은밀하게 힘을 키운다’는 의미로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조조 밑에 머무를 때 철저히 자신을 낮춰 조조의 경계심을 풀었던 데에서 유래한 고사다. 개혁개방 초기의 중국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국력을 키우기 위해 외교적으로 바짝 엎으려야만 했다. 이에 덩샤오핑은 향후 100년간 도양광회의 기조를 유지하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하지만 불과 30여년도 되지 않아 중국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고도성장을 유지하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세계 리더국가가 되기 위해 주변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기지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에 시진핑이 연임에 성공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전랑외교’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자국의 고유한 체제와 가치관을 내세우며 이를 수출하고자 하였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

 

 서방 세계의 인권 문제 지적에 대해서는 인종차별 문제로 맞받아치기 시작했으며, 2017년 사드 사태처럼 자국의 이익에 배반하는 주변국들에게는 경제보복도 불사하며 압박을 가했다. 무엇보다 중국 우한에서 촉발된 코로나 사태는 공격적인 늑대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코로나 확산 초기에 중국은 코로나의 우한 기원설을 부인하며 오히려 미국 군인들이 코로나를 퍼뜨렸다는 식의 억지 주장으로 국제사회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과연 전랑외교는 중국에 득이 될까?

 그렇다면 '전랑외교'는 중국이 리더국가가 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중국의 전랑외교는 미국, 호주, 캐나다, 인도 등 여러 국가와 마찰을 빚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점점 국제사회에서 대중 호감도가 하락하고 있다. 한 때 세계의 굴뚝이라 불리며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던 과거와는 전혀 딴판이다.

 

올림픽 보이콧

 

 최근 올림픽 보이콧은 전랑외교의 폐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위그루족 인권 탄압을 근거로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정부관료에 참석을 하지 않는 보이콧을 선언하였으며, 이에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여러 국가들이 잇달아 보이콧을 선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나 2008년 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중국의 위상을 선전하고자 했던 계획에는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이 전랑외교를 펼칠수록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물론 중국의 막대한 시장잠재력과 경제적 입지를 고려한다면 일순간에 왕따국가가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미국과 체제 경쟁을 이어가면서 주변국에 강압적이고, 패권주의적인 입장을 강요한다면 어느 국가도 중국의 외교정책에 반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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