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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파오차이 논란

 6월 16일 네이버에서 서비스하는 글로벌 스타 인터넷 라이브 방송 플랫폼 '달려라 방탄'에서 방탄소년단이 요리연구가인 백종원 대표에게 김치를 담그는 법을 배우는 내용이 방송되었다. 방송의 배경은 최근 중국정부가 한국의 김치는 자국의 전통문화인 파오차이가 원류라고 우기는 상황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지대한 방탄소년단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해당 방송의 중국어 자막 서비스에서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라고 번역을 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논란에 대해 네이버 측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훈령을 참고해 번역을 했다고 해명하였다. 실제로 2020년 7월 제정한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표기 지침' 훈령(제427호)은 "중국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용적인 표기를 그대로 인정한다"며 '김치'를 '파오차이'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김치공정

 

김치 파오차이 논란은 2020년 11월 중국이 사천지역의 절임야채인 '파오차이'를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산업표준을 등록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김치는 2001년에 이미 국제식품규격으로 인정을 받으며 정식으로 등재된 상황이였다. 2001년 당시에도 일본의 '기무치'와 원조논란이 있었으나, 'Kimchi'라는 영문명이 고유명사로 등록되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2019년 중국에서 '파오차이'가 김치의 국제표준이라며 ISO에 정식으로 안건을 올렸다. 하지만 한국식품연구원은 한국의 김치와 중국의 파오차이와는 무관하다고 하였으며, ISO 역시 파오차이 표준 문서에서 ‘해당 식품 규격이 김치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관영매체는 파오차이가 국제표준으로 등록되자 파오차이가 김치의 원류라고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

 

중국에서 김치가 파오차이로 불리는 이유

 

현재 중국에서는 김치를 일반적으로 '파오차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한식당에서도 김치 관련된 메뉴는 모두 '파오차이'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파오차이는 한국의 김치 말고도 사천 지역의 절임야채로도 불리기 때문에 혼동이 야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김치를 파오차이로 부르게 된 데에는 김치를 중국문화에 편입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라기 보다는 한국의 김치를 중국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고 봐야한다. 언어는 생물과도 같아서 여러 요인에 의해 새로 생기고, 어떤 것들은 사어가 된다. 애초에 김치가 중국에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파오차이(절임야채)', '라바이차이(매운배추)' 등 여러 단어로 불리다가, '파오차이'로 굳혀진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에서 중국의 마라탕을 '마라탕' 그 자체로 부르는 것처럼, 김치로 중국어로 '김치' 그 자체로 불러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중국어의 특성상 불가능하다. 한국어(표음문자)와 달리 중국어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들리는 대로 문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언어이다. (고대 언어의 한계) 그래서 외래어를 중국어식 표현으로 변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어의 외래어 변형 과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외래어 발음과 비슷한 한자를 가져오는 것. 콜라(Cola)를 중국어로 발음이 비슷한 可乐(Kele, 크어러)로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음식의 재료나 조리법에서 착안하여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김치의 경우 주 재료가 배추가 들어가기 때문에 야채를 의미하는 한자 '차이(菜, 야채 채)'가 들어간 '파오차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김치의 어원이 딤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처럼 동양권 문화에서는 어원에 한자가 들어간 경우가 많아 후자의 방법을 많이 쓴다. 예를 들자면, 돼지 돈(豚)이 들어간 돈까스(돈카츠, カツ)는 중국어로 짜주파이(炸排, 튀긴 돼지고기 파이)로 쓴다. 또 베트남의 분짜(Bún chả)는 '분'이 쌀국수이고, '짜'가 구운고기라는 의미인데 이러한 조어법을 그대로 차용하여, 카오로우(烤肉, 구운고기)에 미펀(米粉, 쌀국수)를 붙여 카오로우미펀(烤肉米粉)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중국어에서 외래어를 자기네 나름대로 바꿔부르는 것은 표의문자의 언어적 한계와 그들의 언어습관에서 유래된 것이다. 

 

김치를 중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종합해보면 중국의 관영 주도의 김치공정은 괘씸하지만, 중국에서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이러한 불순한 의도와는 무관한 언어적인 자생력에서 기인하였음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이번 BTS 파오차이 논란 관련하여 김치를 어떻게 번역을 해야할까?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정부 지침이 잘못되었다고 까지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단 중국에서 파오차이 하면 99프로는 한국의 김치를 떠올린다. 사천식 야채절임이 있긴 하지만 중국 내에서도 인지도가 바닥이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이런 김치공정의 논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만 최근 논란을 고려한다면 '한국식'이라는 단어를 붙여 '韩式泡菜(한국식 파오차이)'라고 번역하는 게 타당해보인다.

 

하지만 중국 관영주도로 김치를 교묘하게 중국문화로 편입하려는 상황에서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부르는 것이 찝찝한 것도 사실이다(물론 김치를 뺏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래서 한국 정부 역시 2013년에 신치(新奇)라는 김치의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중국에서 사용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미 파오차이가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는 중국 정부의 지원 없이는 정착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자생력이 있어야 널리 퍼질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신조어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신조어를 듣고 직관적으로 김치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위에서 소개한 '辣白菜(매운 배추)'에 '한국식(韩式)'을 붙여 '한국식 매운배추(韩式辣白菜, 라바이차이)'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농심에서 중국 수출용으로 만든 '辣白菜拉面(라바이차이 라면, 김치라면)'이 인기가 높아 이미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신조어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알려진 단어를 다시 경쟁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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