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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BC 210년 5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진시황은 불로장생에 대한 욕망이 매우 컸는데, 이러한 욕망이 수은 중독으로 이어져 오히려 그의 수명을 앞당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진시황-초상화
진시황-초상화

 

진시황 나이 

진시황은 고대의 인물이지만 그의 일대기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역사서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기원전 259년에 조나라 장양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진시황의 성은 懶(영)이고, 이름은 政(정)입니다. 당시 중국은 전국 7웅에 의해 분열되어 있던 시기이었습니다.

 

진시황은 13세의 나이에 왕위에 즉위합니다. 그는 강력한 법과 군대를 내세워 주변 국가들을 복속시키기 시작했고, 기원전 221년에 중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합니다. 통일 당시 진시황의 나이는 불과 38세에 불과했습니다. 수 백년 간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그가 즉위한 지 10년만에 통일시킨 것입니다. 

 

진시황은 통일 이후 중앙집권적인 국가체계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말년에는 만리장성 건설, 아방궁 건설 등 무리한 토목공사를 추진하며 폭정을 거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기원전 210년 중국을 순시하던 중에 사망하게 됩니다.

 

진시황이 죽었을 때의 나이는 50세 였습니다.

 

진시황과 불로초 

진시황은 불로장생에 대한 욕망이 매우 컸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이루어 준다는 전설의 풀인 '불로초'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얻기 위해 서복이라는 인물을 중국 동쪽 바다를 건너 보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남해안, 제주도, 일본 큐슈 지방에는 서복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설화는 고대 동아시아 국가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은 결국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였고, 결국 50세라는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1974년 진시황의 무덤인 병마용갱이 발견되면서 다시 한 번 진시황의 불로장생에 대한 욕망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병마용갱은 수천 개의 병사 토기를 만들어 진시황을 호위하는 지하 세계였는데, 규모나 화려함의 측면에서 그 어떤 무덤보다도 압도적이었습니다.

 

진시황-병마용
진시황-병마용

 

죽어서도 황제로서의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했던 진시황은 지금까지도 불로초 혹은 불로장생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여전히 많은 창작물에서 불로초라는 설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시황 수은 중독

그렇다면 진시황은 왜 50세의 나이에 죽게 되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진시황의 불로장생에 대한 욕망이 오히려 그의 죽음을 앞당겼다고 합니다. 

 

진시황은 불로초의 일환으로 수은을 먹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수은은 몸에 축적될 경우 정신 발작을 일으키고 폐손상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성 물질이었습니다. 결국 진시황이 즐겨 먹었던 수은에 중독되어 죽음에 이르렀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시황의 무덤 내부에는 수은이 흐르는 강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1981년에는 병마용갱에 대해 토질검사를 실시하였는데, 일반 토양보다 수은의 함유량이 100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이는 진시황이 수은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시황 나이, 불로초, 수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진시황은 엄청난 업적을 쌓은 만큼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은 인물입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진시황과 만리장성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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